본문 바로가기
지식/식물

꽃의왕 ,모란

by 박진우원예치료센터 2016. 10. 12.

미나리아제비과 이며 학명은 Paeonia suffruticosa 이다. 속명의 '파이오니아'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파이온'에서 유래된 것, 종명은 '아저목상의' 라는 뜻이다.


모란이라는 이름은 한자이름 목단이 우리말로 변한 것이다. 원산지는 중국이며 매화와 더불어 중국의 나라꽃 중에 하나이다. 중국에서 모란의 재배역사는 아주 오래 전이다. 대략 서기 200년 부터 약초로 재배되다가 수나라때부터 원예용으로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목경해고』에는 " 옛날 목작약이라고 하는 것은 모란을 지칭한 것이다. 모란은 처음에 따로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작약을 빌어 모란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 

『본초강목』모란에서 "당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목작약이라고 불렀다. 꽃은 작약과 비슷한데 몇 년을 지난 그 줄기는 나무를 닮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 화암수록』「화품평론」에서는 "작약은 충실하고 화려함이 화왕(모란)보다 못하지 않으므로 아마도 화왕에게 먹이를 숙이고 신하 노릇을 하지 않을 것이다"


모란의 역사

모란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신라시대 진평왕 때로 알려 져 있다.『삼국유사』에는 진평왕 때 "당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세 빛깔의 모란을 그린 그림과 그 씨 석되를 보내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 말엽의 최치원이 각 사찰과 석대를 돌아다니며 모란을 심었다는 고사도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도 모란에 관한 기록이 있다. 『고려사』『고려사절요』등의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현종때에는 대궐안 사루에서 모란 시를 짓고 유신들에게 명령하여 화답시를 짓게 하였는데 그이전 덕종에서 숙종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란꽃을 읊고 신하들은 이에 화담하는 행사가 되풀이 되었다고 한다.

의종때 임춘의 『서하집』에 실린 「양국준가정홍모란」이란 시에서 "벼슬하는 집들은 다투어 모란을 심는다" 이후 고려 중기이후 궁중은 물론 권문세가들이 서로 다투어 진귀한 품종을 집안의 정원에 심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는데 너무 호화롭고 사치스럽다 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던것 같다.


모란의 설화

『삼국사기』「신라본기」에 선덕여왕의 공주시절 일화가 전한다.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 꽃 그림을 보고 선덕여왕이 "꽃은 비록 고우나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씨앗을 심어 본 즉 과연 향기가 없었다. 이에 선덕여왕의 연민함을 모두가 탄복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은 선덕여왕이 배우자가 없음을 당 태종이 조롱한 것이라 하여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모란 그림에 벌, 나비가 없는 것은 모란꽃이 향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시에 있어서도 간혹 모란에는 향기가 없음을 읊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선덕여왕의 <모란도>에관한 일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허나 당나라에서 보낸 <모란도>에 왜 벌과 나비가 없었던 것일까? 중국에서는 당나라때 부터 모란꽃에 나비를 같이 그리지 않는 법칙이 있다. 그것은 모란그림에 나비를 그리게 되면 모란 꽃은 부귀를 뜻하고 나비는 질수(80세)를 뜻하기 때문에 부귀질수 , 즉 80세가 되도록 부귀를 누리기 기원한다 라는 뜻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즉 나비를 그려 넣는 것이 오히려 영원히 부귀를 누리는 의미를 제한 한다는 것으로 되어 그리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모란의 효능

모란의 뿌리는 약재로 사용된다.

특유의 강한 냄새를 지닌 근피는 소염, 정혈, 진통등의 작용이 있어서 한방약재로 쓰인다.


모란의 관리방법

식재와 이식은 9월 상순에서 중순이 적기이다.

관리하는 방법은 정원에 심었을 때는 여름 철 건조기에 충분한 양의 수분을 공급한다.

화분에 심었을때는 꽃이 피어 있을 동안에 물이 부족하기 않도록 주의한다.

비료는 가을과 봄, 개화후 뿌리주의에 완효성비료를 시비 한다.


 묘목을 고를때는 모란을 대목으로 사용한 것이 생육이 좋고 수명도 길다. 하지만 시중에 팔리는 것은 작약을 대목으로 한 경우도 있어 구매자가 잘 선택하여 구매하여아 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五月어느날 그 하로 무덥든 날

  떠러져 누은 꼿닙마져 시드러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뻐처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문허졋느니

    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말아

   三百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잇슬테요 찰란한 슬픔의 봄을

                                                      * 1935년 초판본 표기법을 따랐음      



모란은 화중왕이요

                                                         김수장  

모란은 꽃 가운데 왕이요. 해바라기는 충신이로다.

연꽃은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

매화는 가난하고 세력이 없는 선비로다.

박꽃은 노인이요, 패랭이꽃은 소년이며,

접시꽃은 무당, 해당화는 창기로다.

배꽃은 시객이요, 복숭아꽃은 풍류장인가 하노라.